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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조인성 이동진 인터뷰

엔야 2009. 1. 11. 18:17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의외였다. 조인성의 말은 영화 ‘쌍화점’만큼이나 격정적이었다. 그리고 적극적이었다. 그는 시종 꾹꾹 눌러 담으며 힘찬 어조로 말을 했고, 한번도 시선을 떨구지 않았다. 그건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자의 말투와 시선이었다.

‘쌍화점’의 세계를 온통 뒤흔들어놓는 것은 이제 막 당도한 사랑 앞에서 이전의 사랑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의 파장이다. 조인성은 여전히 그 파장 안에 있었다. ‘쌍화점’이라는 새로 도착한 사랑 앞에서, 그는 흥분했고 솔직했으며 또 당당했다.

고려 말 왕실을 무대로 한 멜로 ‘쌍화점’은 배우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조인성은 모든 것을 기꺼이 던졌다. 이 영화를 통해 조인성이 훨훨 비상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스물일곱을 살아낸 한 배우가 견지한 최선의 태도가 있다.

그는 걷는다. 성실하게 걷는다. 쉬지 않고 걷는다. 온 몸으로 걷는다. 그리고, 걷는 자는 결국 공간을 열어젖힌다. 그게 배우 조인성을 믿는 이유다.


-어느 때보다 결과물에 대해서 궁금하셨을 것 같습니다. 완성된 ‘쌍화점’을 처음 보고 나서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 ‘우리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웃음) 고생한 보람이 있네, 감독님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연이어 떠올랐죠.”

-연기하면서 느꼈던 것과 비교하면, 베드신이든 액션신이든, 현재 영화에 담긴 표현 수위는 예상보다 더 강한가요, 아니면 더 약한가요.

“비슷하게 된 것 같습니다. 원했던 대로 표현된 것 같거든요. 사실 베드신을 찍을 때 애로가 참 많았어요. 다양한 앵글을 통해 좀더 자유롭게 표현하기엔 촬영의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다 끝내고 나서 스크린을 통해 보니까, 베드신 자체가 아닌 인물들의 감정이 쭈욱 이어져가는 게 보였습니다. 베드신만을 위한 베드신이 아니라는 게 제대로 드러나서 참 좋았어요. 액션 장면을 찍을 때는 검술 동작을 정교하게 짜나가면서 동시에 감정 연기를 해야 했기에 할 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액션에서도 감정들이 잘 표현됐더라고요.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이 제대로 폭발력을 갖춘 것 같아서 기쁩니다.”

-‘쌍화점’에 대해 충무로에서 거는 기대가 무척 큽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개봉 전에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 제작비도 많이 든 작품이잖습니까? 순제작비만 76억원을 썼으니까요. 주연 배우로서 이런 기대 속에서 개봉을 맞는 게 무척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올 들어 충무로가 워낙 어려워졌기에 기대가 더욱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어요. ‘유하 감독과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함께 한 다음 작품’의 의미 정도를 가질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거든요. 부담이 크죠. 물론 제 입장에서 영화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영화 출연을 계기로 다음 작품부터는 좀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기도 했어요. 내 안에서 금기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이 영화를 통해 깨지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저처럼 생긴 배우가 할 수 있는 연기에는 사실 한계가 있는데, ‘쌍화점’을 통해 그런 것을 부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 나이 서른이 넘으면 좀더 자유로울 수 있을 듯 해요. 그간의 마초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해본 게 배우로서 제게 큰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그 동안 불나방처럼 질렀던 연기만 했는데 이제 안으로 고뇌하는 연기도 시도해 본 거니까요. 돌아보면 저는 한 작품에서 배운 게 그 다음 작품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아마도 차기작에서도 이번에 배운 게 나올 텐데, 그게 뭔지 저도 궁금합니다.”

-처음 유하 감독님으로부터 ‘쌍화점’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제가 감독님의 이전 작품인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참 좋아하는데, 그 작품 이상으로 뽑아주시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인 뒤에는 군말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요. 감독님이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제가 방해가 되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저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물론 이 영화가 ‘스타 조인성’의 이미지를 바라는 것도 분명히 있을 거에요. 저도 ‘스타 조인성’으로서의 이미지를 좋아하지만, 더 원하는 것은 ‘배우 조인성’이에요. 그가 장차 어떤 배우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작품을 할 때만큼은 여러 생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학교가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학교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항상 안 된다고만 했으니까요. 작품을 할 때는 그것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후회가 없지 않겠어요? 감독이 괜히 감독이 아니더라고요. 영화를 만들 때 가까이서 보면 항상 고뇌를 많이 하고 또 늘 외롭거든요. 대단한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하시고요.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들 때 감독님이 맹렬히 몰입하셨는데, 그 순간 빛이 나는 것을 봤어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그런 빛을 보신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감정적 대립이 절정에 이르게 되는 장면(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구체적 묘사는 생략)을 찍을 때였어요. 주진모 선배와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대사를 치고 받을 때 약간 안 맞았죠. 같은 장면을 서른 번 넘게 미친 듯이 찍었는데도 흡족하게 되지를 않더군요. 결국 그날 촬영은 그 상태로 접어야 했어요. 다음날 그 장면을 다시 촬영하기 전에 감독님께서 고쳐 쓴 대본을 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어제 왜 제대로 촬영을 마칠 수 없었을까를 고민해보니 내가 문제였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고쳤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감독님의 마음이 진심으로 와닿았어요. 배우의 기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배우의 속에 있는 것을 더 잘 끌어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마음을 쓰신 거죠. 배우들은 단순해요. 그저 믿게끔 해주면 되거든요. 결국 그 장면은 그 다음날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사실 남자 배우로서 본능적으로 꺼려질 수도 있는 설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이 영화에 꼭 필요한 설정이었기에 ‘끝을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 뿐이었어요. 그 동안의 편견을 다 깨고 싶었어요. 스타가 저런 장면을 찍겠냐는 냉소가 제 주변에서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전부터 어떤 장면이라도 할 마음이 있었어요. 다만 그런 마음을 먹을만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 뿐이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던 것 뿐이죠. 감독님께 의지를 많이 했지만, 이 영화를 찍으면서 기본적으로 제 자신을 믿었어요. 내가 내 자신을 믿지 못하면 남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이 영화의 공개 전후에 많은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편했던 것도 적지 않으셨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아무래도 원색적인 질문들을 받으면 불편해지죠. ‘어떻게 면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내가 그렇게 신비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는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배우로서 나쁠 것 같진 않더라고요. 저는 여자를 정말 좋아하는데 말이죠.(웃음)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 나쁠 것도 없어요. 외국의 유명 배우들도 다 그런 동성애 관련 소문에 시달렸잖아요.”

-특히 외모가 뛰어난 스타들이 그렇죠.

“네, 그러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배우에게 쉬운 연기가 따로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로맨틱 코미디대로,대하 사극은 대하 사극대로, 어려움이 다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종류가 좀 다를 수는 있다는 추측이 들긴 합니다. 이전 출연작과 비교할 때, ‘쌍화점’만이 가진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잠시 생각한 후) 캐릭터의 입체성을 그리기가 어려웠어요.”

-그건 홍림이란 인물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는 일어난 사건에 대해 계속 끌려가는 인물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사실 홍림은 이 영화에서 늘 ‘당하는’ 인물이잖습니까.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인물이고요.

“맞습니다. 홍림은 수동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입체성을 살리기 어려웠어요. 기본적으로 홍림은 분부가 없으면 거부도 할 수 없는 인물이잖아요? 차라리 오열하는 장면이 많고 치열하게 감정을 분출하는 식이라면 연기를 하는 쾌감이라도 느끼겠는데 이 인물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 홍림이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보여지기 위해서는 한 신, 한 신이 차곡차곡 쌓이며 모여야 해요. 그래서 힘들었습니다. 말하자면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할까요. 연기를 할 때마다 ‘뭔가 덜 표현된 게 아닌가’, ‘감정이 덜 와닿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 순간엔 몰라요. 그 장면만 가지고는 배우 스스로도 알 수가 없는 연기였죠.”

-홍림은 감정의 방향과 표현 방식에서 확실히 조인성씨가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들과 다른 것 같습니다.

“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는 조직폭력배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옆에 있으면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잖습니까? 순진함도 있고요.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제가 맡은 역할도 기본적으론 망나니 같은데 한편으론 순수하고 여린 측면이 있었죠. 그래서 오열하는 순간이 오면 임팩트가 무척 강하게 와닿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홍림은 기본적으로 리액션이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고뇌하고 안으로 삭혀야 하는 연기라서 힘들죠. 왕에게 가면 왕이 좋고, 왕후에게 가면 왕후가 좋은데, 그 모두가 진실이죠. 점차 정체성은 찾아가는데, 또 왕은 거부할 수 없잖아요.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치닫는 나를 막을 순 없어. 그런데, 왕은 어떡하지?’ 싶은 거죠. 결국 파국에 이를 때까지 그런 감정들이 표현되고 변화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갈 수 있을까에 대해 내내 고민했어요.”

-어떻게 보면, ‘쌍화점’은 몸이 일으킨 열정을 향해 달음박질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사랑에서 몸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몸이 섞이느냐의 여부에 따라 사랑은 큰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섞이면 이상하게 집착을 하게 되지요. 그러기 전에는 쿨할 수 있지만요. 영화 ‘원스’를 보면서 한편으로 저는 이렇게 느끼기도 했어요. 여자가 그토록 담백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둘 사이에 성적인 관계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는 거죠. 그 두 사람의 정신이 만나 결합해서 사랑을 하게 됐지만, 몸은 섞이지 않았기에 순수했다고 할까요. 몸이 섞이면 그렇게 쿨하게 헤어질 수 없었을 거에요. 그렇지 않았기에 그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담백한 이별이 가능했던 거라고 봅니다.”

-스포일러라서 인터뷰에 자세히 적을 순 없겠지만, ‘쌍화점’에는 ‘몸’이 없는 사랑에 대해 “퍽도 좋아하시겠습니다”라고 부하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는 대목이 인상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영화를 떠나서 묻는다면, ‘몸’이 없어도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으십니까?

“아뇨,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을 만지고 싶어지는 게 자연스런 본능 아닐까요? 플라토닉한 사랑을 누구나 꿈꾸죠. 한편으론 가능하니까 그런 말이 있는 것도 같긴 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오죽 실현이 힘들면 그런 말을 따로 만들어서 지침처럼 여기도록 할까, 싶기도 해요. 사람들이 몸에 탐닉하면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일종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지침을 내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딘가에는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척 힘들긴 할 것 같아요. 제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솔직히 그녀를 탐하고 싶지 않을까요?(웃음)”

-영화 한 편을 찍는 데에는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배우로서 기획 단계부터 촬영, 후반작업, 개봉 전 홍보 일정까지, 전 단계 중에서 언제가 가장 힘드신가요. 또 가장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언제입니까.
 
“시사회 직후부터 개봉 때까지가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그 영화에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혼자서 상상할 때에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혼자 그림을 그리듯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막 만들어가는 거죠.” (이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눈처럼 반짝거렸다.)

-그동안 연기하신 캐릭터들은 거의 모두 구애를 하는 쪽이었습니다. ‘비열한 거리’ ‘발리에서 생긴 일’ ‘봄날’ 등 대부분이 그랬죠. 그런데 이번엔 양쪽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상황의 캐릭터를 연기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색달랐을 것 같은데요.

“네, 그런 것도 어색했어요. 제게는 늘 그 반대가 익숙했으니까요.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비유를 하자면, 새 옷을 입고 연기하기로 해놓고 잘 안 풀려서 옛날 입던 헌 옷을 입고 나와 연기를 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익숙한 연기 패턴을 찾으려고 무의식적으로 그랬겠죠. 그래도 그런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긴 합니다. 조인성씨의 스타성과 외모로 보면 극중 모든 여자로부터 구애를 받는 게 더 자연스러울 텐데, 오히려 그 반대의 캐릭터들을 연기해오셨다는 게 말이죠. 아마도 그건 만든 사람들이 여성 관객들이나 여성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을 겨냥해 설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요.(웃음)

“시트콤 ‘논스톱’ 때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건 보시는 분들이 그런 설정에서 대리만족을 느끼시기 때문인 듯도 하고, 제가 실제로도 구애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러신가요? 여성 분들이 ‘감히’ 구애를 하지 못하시나 봐요.(웃음)

“ ‘감히’일 수도 있고, 실제의 저는 지적인 것을 포함해 매력이 좀 떨어져서 못 받는 것일지도 모르죠.(웃음) 배우는 극중 캐릭터로 사랑을 받잖아요? 그런데 예를 들어 개그맨은 실제 그 사람의 본성으로 사랑을 받죠. 제가 버라이이티 쇼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서 제 본성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선 스스로 물음표를 던집니다. 그 부분에서 저는 그런 분들께 무릎을 꿇어요. 그래서 저도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채워지게 되면, 알고 이해하는 만큼 연기도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는 것에서 멈추면 퀴즈 프로에서 정답을 맞추는 것에 불과하니까 그것을 넘어서서 이해하려고 하는 거죠. 이해의 단계를 넘어서면 아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사실 배우는 가끔 ‘척’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참 시시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이해하려고 하고, 깨달으려고 하고, 깊숙하게 알기 위해 노력을 해요. 활자에도 좀더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요. 그렇게 되면 대사 장악력도 키워질 것 같습니다. 그게 책이든, 저보다 지적으로 수준이 높은 사람이든, 만났을 때 머리 속에 있던 뜬 구름 같은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 오면 그 쾌감은 말로 못해요. 그런 걸 느낄 때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아무리 연기고 일이라고 해도, 대형 스크린에서 보면 스스로의 모습이 좀 민망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쌍화점’처럼 강도 높은 베드신이 있으면 더 그럴 듯 싶은데요.(웃음)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누가 쳐다보는 게 아닌데도 어둠 속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게 되더라고요.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혼자 볼 때는 보겠는데, 영화는 같이 봐야 하니까 정말이지…(웃음)”

-게다가 시사회를 하면 그런 연기를 함께 했던 상대 배우와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봐야 하잖아요?(웃음)

“그러니까요.(웃음) 그런데, 차라리 우리끼리는 편해요. ‘야, 야, 나온다!’ 그러면서 미리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당당하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민망하고 뻘쭘한 걸 진짜 못하거든요. 분명한 것은 제가 배우의 기질을 타고난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시상식 같은 데서도 당당하고 멋있어야 하는데, 아유, 정말 죽겠더라고요. 진심으로 죽겠어요.(웃음)”

-그런데 오늘 저는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조인성씨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신데요? 말씀도 매우 분명하면서 열정적으로 하시고요.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신 것 같습니다.

“그건 대화 상대에 따라 정말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진심을 말하게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때에 따라선 제가 4차원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자신을 보여주려 하다가 스스로 막을 수도 있고요. 불편하거나 뻘쭘해지면 말을 하다가도 스스로 멈출 때가 많거든요. 저는 일상에서는 4차원이고 싶지는 않아요. 어른들께는 예의 바르고 겸손하게 행동하고 싶고요. 부모님께서 항상 말 조심하라고, 카메라가 늘 주위에 있다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요. 저는 제 마음 속에 있는 4차원적인 요소들은 연기를 통해 뿜어내려고 노력해요. ‘쌍화점’에서의 저는 조인성의 4차원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시도가 저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도전하고 싶어요.”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데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적절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큰 규모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할 것 같습니다.

“상업적인 영화에서는 분명 그런 게 부담스런 측면이 있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저는 영화 ‘비열한 거리’를 끝내고 나서 일단 텔레비전으로 돌아가 ‘베스트 극장’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때마침 그 프로그램이 없어져버려 안타까웠죠. 사실 제가 드라마에 좀더 익숙해져 있잖아요? 연극 출신 영화 배우들이 종종 연극으로 돌아가곤 하는 데에는, 다시금 자신 있게 스스로를 시도해볼 수 있는 마당이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처럼 저 역시 상업성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저를 시험해보고 체크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 ‘베스트 극장’을 하려고 했던 거죠. 개런티를 안 받더라도 상관없으니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개런티를 많이 받으면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니까요.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나는 좀 쉬어가는 기분으로 작품을 한다고 해도,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고 그것 자체로 평가할 거라는 거죠. 그래서 결국 배우는 매순간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인성씨에 대한 인상에는 키와 눈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조인성씨의 눈은 선하고 슬픈 느낌이 강하죠. 그건 배우로서 대단한 매력이지만, 다른 한편,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야 할 때 일종의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배우에게 눈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음… 그래도, 선하고 슬픈 게 기름진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웃음)”

-그럼요. 백만배 쯤 낫겠죠.(웃음)

“저는 갈수록 싸늘해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윤택하게 느껴지고, 세상에 대해서도 웬만큼 안다고 느끼면서 제자리 걸음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계속 발전하고 싶거든요. 그렇게 계속 나아가려고 하면 저 스스로가 어느 정도 싸늘해질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밖으로도 그런 게 비춰지지 않을까요? 조니 뎁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면 슬퍼 보이면서도 좀 싸늘한 눈이잖아요. 그런 눈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배우로서의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충돌하는 순간도 생기지 않을까요. 배우가 개인적 삶이 너무 안락하면 연기의 다양성이나 깊이에 어느 정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혹시 좋은 배우가 되는 것과 좋은 아버지 혹은 남편이 되는 것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시나요.

“충돌이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사적인 생활과 연기는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고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배우는 계속 불안정할 수 밖에 없는 직업인 것 같아요. 그런데 자연인으로서 가정을 성실하게 챙기고 아이의 아버지로 안정감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저도 정답을 모르겠어요. 제가 언제까지 청춘 연기를 할 수도 없고요. 사생활의 안정과 연기의 불안정을 함께 아우를 수 있도록 지적인 수준을 올리고 인간 됨됨이를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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